‘14년 무사고 자부심!’
성형외과 수술 중 발생한 의료사고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그 병원이 내건 광고를 봤다. 아들이 떠난 지 한 달 만이었다. 사고를 내고도 '무사고' 광고를 하는 뻔뻔스런 모습에 어머니는 경악했다. 어머니는 보건소에 이 사실을 알렸고, 사건은 의료법위반으로 검찰에 고발돼 병원은 벌금과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로부터 1년 2개월 뒤, 어머니는 다시 보건소를 찾았다. 병원이 다시 광고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보건소는 경찰에 고발했고, 경찰은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 동안에도 병원은 이미 취소된 수상내역 등을 내걸고 허위·과장광고를 지속했다.
아들 사망사고를 수사하던 검찰은 새로 추가된 광고사건을 병합해 함께 수사하겠다고 전했다. 어머니는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이렇다 할 답이 오지 않았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 보건소는 검찰로부터 이 사건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각하처리됐다고 전해왔다. 경찰이 사건을 송치한지 7개월만이었다.
권대희씨 의료사고 사망사건을 수사해 핵심혐의를 불기소처분한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 성재호 검사가 서초보건소가 고발하고 서초경찰서가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병원 광고사건을 '각하'처분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고부터 처분까지 무려 7개월이 걸린 이 사건은 같은 병원이 비슷한 광고로 처벌을 받은 뒤 다시 고발된 사건으로, 검찰의 '봐주기 수사' 의혹이 제기된다.
■같은 사건 다른 결론... 유족 '끝없는 고통'
사건의 주인공은 이나금씨다. 2016년 9월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다 위험한 상황에 놓여 49일 만에 사망한 권대희씨 모친이다. 아들이 사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병원의 ‘무사고’ 광고를 본 이씨는 직접 이를 서초보건소에 고발해 처벌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 병원의 위법행위는 끊이지 않았고, 이씨는 2018년 12월 국민신문고를 통해 다시 한 번 이 병원의 부당한 광고를 처벌해달라고 요청했다. ‘14년 무사고’ 광고를 보고 이 병원을 찾을 많은 젊은이들이 아들처럼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걱정에서였다.
8일 서초보건소와 유족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해 11월 26일 해당 사건 고발을 ‘각하’ 처분했다. ‘증거 불충분하여 혐의 없음’이 공개된 이유의 전부였다. 사건을 수사한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당시 부장 강지성·현 부장 이창수) 소속 성재호 검사였다.
서초경찰서가 사건을 수사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겼을 당시 다른 검사에게 이 사건이 배당됐으나, 성재호 검사가 이를 병합해 수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 검사가 ‘권대희 의료사고 사망사건’ 수사를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이씨는 “성재호 검사가 말하길 ‘원래는 다른 검사님이 이 사건을 담당했는데 제가 수사하겠다고 하고 합병을 했다’고 했다”며 “수사에 의지가 있는 줄 알고 얼마나 감사한지 허리를 90도까지 굽혀 인사를 하고 나왔다”고 떠올렸다. 지난해 6월 고소인 자격으로 검찰수사를 받았을 당시 일이다.
서초보건소가 고발한 이 광고사건이 검찰 송치 이후 각하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모두 7개월여에 달한다. 앞서 2017년 같은 병원이 한 비슷한 광고로 서초보건소가 고발한 사건이 3개월 반 만에 처벌까지 이뤄졌음을 고려하면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봐주기 수사' 의혹 검사... 광고 고발도 '각하'
문제는 이 사건을 각하 처분한 성재호 검사가 권씨 의료사고 수사에서도 주요 혐의를 불기소하는 등 ‘봐주기 수사’ 정황이 있다는 점에 있다. 성 검사는 이미 같은 광고로 처벌받은 전례가 있는데다 보건소와 경찰이 모두 의료법 위반으로 판단한 광고에 대해 위법하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서초경찰서에 보강수사 지시까지 하며 무려 7개월 만에 내놓은 결론이었다.
2017년 최초 고발 당시 문제 성형외과 병원은 PC 홈페이지에서 ‘14년 무사고’라는 문구를 활용해 광고를 진행했다. 병원 측은 2016년 9월 권씨가 사망했음에도 광고를 지속하다 유족 측이 수차례 항의한 2017년 1월에야 해당 문구를 슬며시 내렸다. 서초보건소는 이를 의료법 제56조 ‘의료광고의 금지 등’ 위반으로 고발했다. 3개월 반 만에 병원은 벌금 100만원·3개월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병원은 홈페이지와 상담실장 카톡 프로필 등을 통해 ‘14년 무사고’ 문구를 지속적으로 노출했다. 이씨는 아예 이를 직접 캡처해 국민신문고에 재차 고발했다. 사실상 유족이 수사를 대신한 꼴이다.
이를 종합하면 성 검사는 병원이 서초보건소의 1차 고발로 처벌받은 뒤에도 거짓 정보를 지속해 노출시킨 사실을 확인했지만 수상한 각하처분을 내린 게 된다. 권씨 의료사고 수사의 의문점들과 맞물려 봐주기 수사 의혹이 짙어지는 대목이다.
■블로그에선 여전히 '14년 무사고!'
법조계에선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한 변호사는 “전례가 있는 사례를 왜 7개월이나 묵히다 각하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사람이 죽은 사건이란 걸 감안하면 빠르게 구제할 필요가 있는데, 보건소와 경찰서 의견에 반해서까지 각하처리를 한 건 이상하다”고 평가했다.
유족 측 형사사건을 대리하는 조진석 변호사(법무법인 세승) 역시 “일반적인 사례는 아니다”라며 “보건소에서 기관고발을 통해 온 건데 불기소처분이 나가는 건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비판했다.
검찰이 어떠한 처벌도 하지 않은 가운데 문제 병원은 성황리에 영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포털사이트에 그대로 노출되는 이 병원 블로그에선 아직까지도 ‘14년 무사고’란 문구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어 충격을 더한다. 이 병원에서 아들을 잃어버린 이씨는 매일 눈을 뜨면 이 문구를 확인한다고 했다.
이나금씨는 “우리 아들도 나한테 알리지 않고 혼자 성형외과에 가서 수술을 받다가 그렇게 됐다”며 “그때 아들이 보고 간 광고가 ‘14년 무사고 자부심’ 그거였는데, 그게 그대로 노출이 돼서 이제 막 성인이 된 젊은 사람들이 그걸 믿고 병원에 가서 잘못될까봐 마음이 너무나 안 좋다”고 괴로워했다.
출처 :
https://www.fnnews.com/news/2020020816133147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