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고비’로 잘 알려진 당뇨 및 비만 치료제 성분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를 복용하는 사람들이 술을 마신 뒤 취하는 속도가 더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약물이 알코올이 혈류로 들어가는 속도를 늦춰 뇌에 미치는 영향을 지연시키는 원리다. 알코올 사용 장애를 줄이는 새로운 치료법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미국 버지니아 공대 프랄린 생명의학 연구소 연구진은 세마글루타이드와 같은 GLP-1 작용제 계열의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들이 알코올의 효과를 더 늦게 경험한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15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이 약물들은 위가 비워지는 속도를 늦춰 알코올이 혈류로 흡수되는 것을 지연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이끈 프랄린 생명의학 연구소 건강행동연구센터의 알렉스 디펠리체안토니오 조교수는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와인 한 잔을 천천히 마시는 것과 위스키 한 잔을 단숨에 마시는 것의 차이를 안다”며 “흡수된 알코올이 체내에서 빠르게 작용할수록 남용 가능성이 높은데, GLP-1 약물이 알코올의 혈류 유입을 늦춘다면 그 효과를 줄여 사람들이 덜 마시도록 도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성인의 절반 이상이 술을 마시며 약 10명 중 1명은 알코올 사용 장애를 겪고 있다.
연구진은 체질량지수(BMI) 30 이상인 참가자 20명을 대상으로 소규모 예비 연구를 진행했다. 절반은 세마글루타이드, 티르제파타이드 등 GLP-1 약물을 복용 중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아무 약도 복용하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동일한 양의 알코올을 섭취한 뒤 호흡 내 알코올 농도와 주관적인 취한 정도를 측정받았다. 그 결과, 약물 복용 그룹은 호흡 내 알코올 농도가 더 천천히 증가했으며, “지금 얼마나 취한 것 같으냐”는 질문에도 일관되게 덜 취한 것 같다고 답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효과가 기존 알코올 섭취 감소 약물인 날트렉손 등이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것과는 다른 원리라고 설명한다. GLP-1 약물은 위 배출을 늦추는 방식으로, 알코올의 물리적인 흡수 속도를 조절해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소셜미디어 레딧(Reddit)에서 해당 약물 복용자들이 알코올 갈망이 줄었다고 보고한 내용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번 연구는 소규모 예비 연구라는 한계가 있지만 연구진은 두 그룹 간의 명확한 차이가 향후 알코올 사용을 줄이려는 사람들을 위한 치료법으로 이 약물을 시험하는 대규모 연구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제1 저자인 파티마 쿠도스 연구원은 “이번 연구가 과학적 이해를 증진시킬 뿐만 아니라, 중독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는 미래 치료법의 길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출처<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9/00055734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