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냥저냥 평범한 듯 좀 경제적으론 부족한 집에서 태어나서 약간 아둥바둥 살았어. (굶진 않음)
그 와중에 남성 우월적/가부장적인 가풍으로 난 나 혼자 그걸 용납 못해서 대들다가 남동생보다 더 맞고 자람(연년생이고 내가 장녀)
공부도 내가 더 잘했지만 집안에서 대학 둘 보낼 순 없다고 난 상업고, 동생은 인문계 보냈고 그래도 지기 싫어서 4년제 대학 갈거다 하고 혼자 준비하면서 공부는 학교에서 방과 후 ebs 책자로 공부하고 수시 혼자 넣으면서 논술 혼자 공부함.
(난 고등학교 다니며 대학입시 준비할 때 단과학원 한번, 시립도서관 다니고 동생은 독서실이랑 단과과외, 학원도 감. > 이 부분은 그냥 그러려니 했던 거 같아. 내가 보기에도 집이 여유가 없긴 했고 내 돈 아니니 더 요구는 못한다고 이미 생각했어)
이 악물면서 공부했다보니 운 좋게 역시 내가 동생보다 더 좋은 대학 갔고, 솔직히 내가 간게 내가 다니던 상업고에서 전무후무 할 정도의 기록이었음. (인서울 10위권 - 진심 이게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아직 모르겠음. 근데 진짜로 이악물고 샤프심으로 허벅지 찔러가며 버팀)
없는 살림에 대학교를 둘이나 연이어 가니 역시 빠듯해서 하루 교통비, 점심비 계산하며 다녔고 집이랑 멀어서 9시 수업 들으려면 5시에 일어났고 오후 수업듣고 공부 후 밤 9시 차 타면 12시 귀가, 용돈벌려고 주말알바 하는 생활을 보내서 대학시절 낭만 이런거는 꿈도 못꿈. 밥값 아껴서 책사고 다 본책은 팔면서 차비로 쓰든 김밥을 먹든 했던거 같아. 당시 학식도 부담인데 대학인근 식당에서 밥먹고 카페다니는건 사치라서 친구는 다 포기했어. 보통 매점에서 김밥이나 빵, 우유로 때우고, 며칠씩 고민하다가 한번 씩 이삭토스트 저녁으로 먹는게 특식같은 거였음. 오후 6시 마치는 수업 들어도 최대한 두유 하나먹거나 점심 때 먹고 남긴 빵먹고 집에 와서 저녁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와중에 공부욕심 있어서 이중전공함. 지금 생각하면 내가 ㅁㅊㄴ이지…)
여기서 끝이면 좋았을텐데 또 그 와중에(…) 꿈은 커서 대학원에 감. 그때에 학석사연계과정이라는게 생겨서 학사 3.5 + 석사 1.5 년으로 총 5년(대학교보다 1년만 더 다니면 되도록)과정이 나와서 그것도 준비하느라 대학 3학년 때 꽉꽉 채워듣고 대학원 수업도 같이 듣기 시작해서 하루 4시간 겨우 잠.
대학원 들어가서는 학비 땜에 조교활동 하느라 낮엔 일하고 밤-새벽엔 공부하며 시간 다 씀.
그 와중에(… 하 끝이 안나네. 나란 ㅁㅊㄴ) 또 영어는 배우고 싶다고 휴학내고 알바해서 모은돈 들고 호주 일년가서 귀랑 입트고 돌아옴. (진짜 독한ㄴ이라는 소리를 귀에 딱지앉듯 들으면서 살아옴)
결과적으론 내가 다 하고싶은거 하고 악으로 깡으로 다 하고 살았는데 그 과정에서 돈 언제 벌꺼냐, 취업이나 해라, 여자가 뭘 공부냐 등등 진짜 엄청나게 스트레스 받고 돈은 또 없어서 위경련+스트레스로 머리쥐어뜯고+매일수면부족(>으로 학교 계단에서 자주 구름) 속에서 공부했던거 같아
내가 고집이 정말 세서 절대 안졌거든. 어릴때도 내가 맞다고 생각하면 아빠한테 매가 부러지도록 맞아도 눈 똑바로 뜨고 잘못했다라는 말 안하고 바득바득 우겼음.
중고등대학교 모든 학창시절 동안 특히 아빠랑 그렇게 매번 부딪치면서 성향 안맞고 게다가 다소 경제적으로도 부족한 집이다보니 너무 힘들어서 일 하고 나서는 훨씬 데면데면해진 것 같아.
빌드업이 엄청 길었는데, 이런 스토리 다 알고있는 내 주변 오래된 지인이나 친구는 내가 집 이야기 하면 학을 떼고 특히 아빠를 싫어하는 걸 알거든. 넌 그래도 된다는 말 자주 들었고 나도 은연중에 그런 생각 했고…
근데 내가 나이가 드니 부모님은 더 나이가 들더라고. 특히 아빠가 암투병이 시작됐는데 1차땐 나이나 아픈거 치곤 너무 멀쩡히 식사도 일도 문제가 없어서 나도 그냥 그러려니 한거지. 근데 전이 판정 받고 얼마 전 부터 좀 싸하더라고. 사주를 봐도 집에 일이 있을거라 하고 상태가 전이랑 다르니 좀 내려오라 하고. 그래도 설마설마 했는데 정말 일은 생각지도 못하게 터지더라.
딱 어버이날이 병원가는 날이라 그때 밥 같이먹자 해서 그때보면 되지 하고 있었는데 어린이날(새벽)자던 중에 전화와서 내려감… 그렇게 아빠 돌아가시고 처음 장례라는걸 치뤄보는데, 난 위에 말한 히스토리도 있고 지병이 있던 상황이라 어느정도 생각은 하고 있어서 난 아빠가 돌아가셔도 눈물 한방울도 안나올거 같다 생각했다.
와… … 겪어보기 전 까지 단언하면 안되더라.
이게 내가 힘들고 억울한거는 뒷전이 되고 돌아간 아빠 기준으로 죽기 전 까지도 계속 아빠는 일만 한거, 본인이 비행기 타는걸 불편해해서 못갔지만 해외 여행한번 못간거(아프기 전에 겨우겨우 제주도 한번 다녀옴), 별 다른 재미 이런거 못느끼고 걍 일 + 집 + 술(&담배)로만 스트레스 풀면서 크게 아프기 전 까지 일만 했거든. 험한 일이라 다치기도 많이 다쳤고 그리고 돌아가시기 하루 전인가 나한테 전화 좀 해보라고 엄마한테 말했는데 마침 그때 엄마랑 싸웠던 때라 하지말라ㅜ해서 통화도 못했어.
딱 몇달 전 재발여부 확인으로 검사때문에 입원했을 때 반차내고 병원 간 적이 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되어 버린거지.
그러고나니깐 느낀게 아 나 이제 아빠 없구나…
엄마가 마지막으로 외할머니 돌아가신 후에 막 울던거 기억나고, 아빠도 엄마랑만 친할아버지/할머니 산소 가서 울면서 자기 고아됐다고 말하면서 울었었다는 옛날 이야기들 생각나면서 아 이제 나도 엄마만 남았네 이게 너무 크게 다가오더라고 (엄마도 나이가 많음. 두 분이 다 늦게 결혼했고 거기다가 엄마랑 아빠는 나이차도 커서 내 또래 친구들보다 부모님 연세가 많으심)
결혼할 때 아빠 손 잡고 들어가는게 싫어서라고 결혼이 싫다는 생각까지 했는데 이렇게 되니깐 뭔가 가슴이 뻥 뚫린 거 같음.
동생도 그 때 연휴시즌이라 휴가내고 멀리 가려고 일정 다 잡았다가 직전에 집에 다녀오고는 다 취소했다 하더라고. (취소해서 다행이지 아니먄 상주없이 장례치르거나 급히 돌아오느라 난리났을 듯)
여기 친구들도 부모님하고 싸우고 사이 안좋고 그런 친구들 있는거 같은데 뭐 그렇다고 있을 때 잘해라 이런 말 하려는 건 아니야. 서로 힘들면 떨어지는게 답인 가족도 있으니깐
근데 이게 내가 아직까지 계속 힘들고 아직도 종종 울면서 현생 집중 못하는게 “내가“ 후회되는게 많아서인것 같아.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 내려가봤거나 통화라도 했거나, 아님 어찌어찌 해외여행이라도 억지로 보내드랴서 내 만족이라도 채웠으면 이런 기분이 덜 했을 거 같아. 효도의 개념이 아니라 그냥 내 만족인거지. 예전에 그렇게 뭐라 했던 딸이지만 지금 알아서 잘 커서 해외여행 보내드릴 정도로 성공했다-이런 내 만족을 위한 뿌듯함 같은거. (그나마 엄마랑은 몇번 다녀오고 앞으로도 계획이 있어서 그건 잘했다 싶은 맘이다. 사실 엄마랑도 성향이 아주 맞진 않아서 종종 싸워)
겪고나니깐 이게 부모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날 위해서 후회를 안남겨야, 부모님을 잃더라도 내가 아프지 않고 현생으로 다시 빨리 돌아오는 거 같아.
생각보다도 더 치유가 안된다. 아직도 밥 먹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울고 자다가 깨서 울어. (벌써 밤 다 샜네. 물론 울다가 다 샌건 아니다)
5월은 날씨도 참 좋고 휴일도 많아서 좋기만 했는데 매년 어린이날이 나한텐 속상한 날이 될거 같아.
뭔가 일기장 마냥 오밤중에 TMI를 남겨버렸네. (이 사이트엔 가족이나 주변 알만한 지인이 올일 없다보니 대나무숲처럼 써버렸네)
꼭 부모님 건이 아니더라도 중요한 사람(애증의 감정이라도)이 있으면 내 만족을 위해 후회는 남기지 말길 바라.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은 진짜 중요한 일로 후회를 안해봐서 할 수 있는 말이더라.
나도 이제 적당히 속상해하고 한달 좀 지나면 이제 좀 담담해지고 현실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