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정보] 귀지로 질병 진단하는 시대 오나…"귀 질환에서 암까지"

귀지가 다양한 질병의 조기 진단에 활용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왔다. 알츠하이머병, 암, 심장질환, 당뇨병 등 주요 질환이 귀지의 화학적 구성에 반영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학계는 귀지를 새로운 생체 지표로 주목하고 있다.

29일 BBC 보도에 따르면 오랫동안 연구의 관심 밖에 있었던 귀지가 최근 들어 인체 내부 대사 변화를 반영하는 중요한 단서로 재조명되고 있다.

귀지는 외이도의 피지샘에서 분비되는 물질에 죽은 피부 세포, 모발 등이 섞여 형성된다. 하루 약 0.05mm씩 귀 밖으로 이동한다. 외이도를 청결하고 촉촉하게 유지하는 동시에 세균, 곰팡이, 곤충의 침입을 막는 역할을 한다.

귀지의 특성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유럽계와 아프리카계 인구는 주로 노란색 또는 주황색의 끈적한 '습성 귀지'를 갖고 동아시아계 인구의 95%는 회색빛의 건조한 '건성 귀지'를 가진다. 귀지의 특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진 유전자 'ABCC11'는 겨드랑이 냄새 여부에도 관여한다.

귀지는 과거에도 질병 간의 연관성이 밝혀지면서 학계 주목을 받은 적 있다. 1971년 연구에선 습성 귀지를 가진 미국 내 백인, 아프리카계, 독일계 여성들이 건성 귀지를 가진 일본, 대만 여성보다 유방암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4배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2010년 일본 도쿄공대 연구팀도 유방암 여성 환자가 건강한 대조군에 비해 습성 귀지 유전자를 보유할 확률이 77% 높다는 점을 보고했다. 단 이들 연구는 인종별 샘플의 차이가 크다는 점 등으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한동안 주춤했던 귀지와 질병 간 연관성을 찾는 연구는 최근 다시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귀지의 화학적 구성이 질병을 진단하는 단서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최근 학계에선 어지러움과 이명을 동반하는 메니에르병 환자는 귀지 내 특정 지방산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낮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기존에는 메니에르병을 진단하기까지 수년에 걸쳐 다른 질환의 가능성을 차례로 배제해야 했지만 앞으로 귀지 분석만으로 빠른 진단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희귀질환인 메이플시럽뇨병을 발견하는 데도 귀지가 단서가 된다. 소변에서 메이플 시럽 냄새가 나며 치료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메이플시럽뇨병을 앓는 환자는 귀지에서 달콤한 향을 내는 '소톨론' 분자가 검출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귀지 채취만으로 대사 이상을 조기에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귀지를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감염 여부나 제1형, 제2형 당뇨병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기술이 연구 중이다.

학계는 귀지가 혈액이나 소변보다 대사의 변화를 장기간 축적하기 때문에 암, 당뇨병,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등 다양한 질병의 조기 진단에 유리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넬손 로베르토 안토니오시 브라질 고이아스연방대 교수 연구팀은 귀지를 활용해 다양한 질환을 발견하는 진단법 '세루메노그램'을 개발했다. 안토니오시 교수 연구팀의 2019년 연구에선 림프종, 암종, 백혈병 환자 52명과 건강 대조군 50명의 귀지를 분석해 귀지에 함유된 유기화합물 27종을 기반으로 100% 정확도로 암 환자를 구분하는 데 성공했다.

세루메노그램은 임상현장에도 도입됐다. 브라질 아마랄 카르발류 병원은 암 진단과 암 환자 모니터링 지표에 활용하고 있다. 연구팀은 세루메노그램이 향후 암세포의 대사 변화뿐 아니라 전암 단계까지도 감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귀지를 활용한 간편 검사 키트 개발도 시작됐다. 라비 앤 무사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 교수 연구팀은 메니에르병 조기 진단을 위한 휴대용 키트 상용화를 준비 중이다. 연구팀은 귀지에 지질 성분이 풍부하며 대사 불균형에 민감한 만큼 혈액과 함께 질병 진단의 주요 검사 대상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출처<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584/0000032127>